허지웅 기자의 '메기 질렌할 못생겼다' 발언에 따른 파문

먼저 허지웅 기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뭐라고 좀 써보려고 하는 소녀의 무례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지난 주 토요일, MBC라디오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토요일 패널을 맡고 있는 허지웅 기자는 '다크 나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이소라 씨의 '다크 나이트의 아쉬운 점은 뭐냐'라는 질문에 '메기 질렌할이 못생겨서 흠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후의 발견'과 허지웅 기자의 팬인 본인도 그 방송을 실시간으로 들었고, 그 부분에 대해 그저 평소의 허기자스러운 솔직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나는 '다크 나이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메기 질렌할의 얼굴은 모른다.) 그 뒤로 '원성백'이라는 청취자인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 허기자의 안티인지 원산지가 살짝 불분명한 분의 글이 '오후의 발견'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내용인즉슨, 허기자의 여배우에 대한 외모를 지적하는 발언은 상당히 저급한 수준의 이야기이므로 앞으로 그런 식의 발언은 삼가라는, 간추리자면 그런 이야기였다. 허기자는 그 글에 대한 답글을 달았고 그 답글의 내용에서는 허기자의 기준에 못생긴 것을 못생겼다고 솔직하고 자유롭게 말한 것인데, 그 프로가 뉴스 데스크도 아니고 그 부분에 대해 원성백씨가 사용한 표현들이 그의 심기를 잔뜩 건드린 듯한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솔직히 내가 봐도 원성백씨의 표현은 좋지 못했다. 글의 요지는 분명했다. 방송을 들을 당시는 그저 웃어넘기듯 들었지만 원성백씨의 글을 보고 나니 어쩌면 허기자의 그 발언에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다크 나이트'의 완벽함을 칭찬하기 위한 역설적인 표현이든, 혹은 허기자 본인의 순수한 취향에 근거한 솔직한 심정이었든, 메기 질렌할이 따지기 전까지야 나같은 사람들이 감놔라 배놔라 할 입장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메기 질렌할의 외모 때문에 영화를 보는데 헛웃음이 나왔다는 말은 제법 매를 부르는 이야기였음은 틀림없다 생각한다. 원성백씨의 지적이 아주 비논리적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전하는 방식에서 NG였다면 NG일 것이다. 이쯤에서 내 머리속에 분명하게 정립된 생각은 허기자가 메기 질렌할의 외모에 대해 야멸차게 발언한 것과 원성백씨의 누가봐도 허기자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긁을 만한 어투로 쓴 권고(?)의 글, 모두가 실수라는 것이다. 평소 허기자의 직접적이면서 딱 떨어지는 분명한 이야기 방식은 좋아하지만 가끔은 세상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생각해서 가려 말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메기 질렌할이 실은 너무 못생겼지만 그 마음 숨기고 너무 예쁘다고 말하라는 거짓말을 교사하는 식의 의도는 아니고 필히 해야할 이야기가 아니라면 굳이 이야기해서 글거 부스럼을 만들 필요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허기자의 입장에서 메기 질렌할의 외모이야기는 꼭 해야하는 것이라면야,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는 거지만. 원성백씨는 꼭 그렇게밖에 이야기 할 수 없었는지. 실명까지 밝히며 지적한 것은 좋았으나 허기자의 발언에 대해 노닥거리는 수준을 논할 만큼의 설득력있는 글은 아니었다. 게다가 끝에 '너 참 많이 컸다'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결론이라니. 글을 읽는 처음에서부터 스멀스멀 느껴졌던 '이건 혹시시, 혹시 뭐 시기나 질투라는 그런 졸렬한 의도에서 나온 그런 것은 아니겠지'라는 불길한 예감에 어느 정도 답이 되었던 결론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분 다, 각자 다른 이유와 방식에 있어서 실수들은 있으셨음을 인정하시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래, 네 말도 옳으며, 네 말도 옳구나'식의 중립적이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적하겠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 이번 사태가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커지고 있는 가운데 허기자의 과한 솔직함에 대해 지적해주고 싶은 반면 '먹고 사는 것 참 힘들지 않나요'하며 등을 두드려 주고 싶기도 하다. 평론가인지 기자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그의 직업, 어느 것이든 간에 그는 말하고 써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인데, 그 글의 성격이라는 것이 냉정해져야 하는 어떤 부분과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요구하는 모호한 것이라서, 세 치 혀의 놀림에, 한마디 손가락의 움직임에 그는 매를 맞고, '지웅신'으로 추앙받으며, 저열한 수준의 소유자라고 욕먹기 십상이다. 아마 처음에는 이번 사태에 대해 뭔가 소심하게나마 한마디 하고 싶어서 시작했을지 모를 글이 어느새 '허기자님, 힘내세요'의 글로 변질되어감을 느끼지만, 중간즈음에 내 의견을 밝혀놓았으니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 허기자를 알게 된 것은 '오후의 발견'을 듣게 되면서부터인 나는 허기자의 형소 어투라던지 성향이라던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허기자를 좀 더 알아보려고 찾아본 웹상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거의 '막말지웅'의 수준이었다. 방송을 듣다 보면 참 솔직하고 노골적이다 싶을 때도 어지간히 있었지만 막말하는 패널로 점찍힌 그는 '막말지웅'에 대해 어떤 마음일지. 지금까지 '너도 잘한 거 없어!'라는 식으로 회초리질 찰싹찰싹 해놓고서는 끝에서야 달래주는 이 마음, 속상하기 짝이 없다. 그의 블로그에 달린 그 수많은 양질과 저질의 댓글들로 인한 인간불신과 염세로 허기자의 흡연량이 급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언론인 허지웅 힘내라. 

by 염신영 | 2008/08/12 16:57 | 모든 아름다운 것들 | 트랙백 | 덧글(0)

어울리지 않는 이름, 21살.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와 무엇이 어울리는지 혹은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를 깨닫곤 한다. 그 깨달음이 때로는 허탈하게도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것일 때도 있다. 요즘의 나는 언제나 인생을 꽉꽉 채워가며 알뜰하게 살아갈 수 없다면 공백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공백. 내가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혹은 상황상 여유가 있어서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제법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고, 하나의 치열함이 종결됨과 동시에 또 다른 것을 위한 치열함에 나를 던져놓아야 한다. 최근에 든 생각은, 나에게 21살의 나이는 몹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16살에 처음 채팅을 시작했을 때, 자주 가던 카테고리의 방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한참 즐겁게 이것저것 대화를 하다보면 그 대화에 녹아 서로가 가지고 있던 익명성의 벽을 허무는 순간이 온다. 그 때마다 16살이라는 내 나이를 밝히면 공교롭게도 나는 항상 그 중에 가장 어린 소녀였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기 십상이었다. 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공간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덕분에 나는 오묘한 이유로 나이를 밝히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가끔은 거짓으로 나이를 속이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이루고 싶은 일이, 덤벼보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다. 언제쯤 그것들에 기꺼이 나를 바칠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하기엔 지금 나에겐 그런 나를 억눌러야하는 주변의 상황들이 너무 많다. 아, 이것은 역시 핑계일까. 나에겐 자유가 필요하다. 21살이라는 나이때문에 감출 수 밖에 없는, 조금 더 미뤄둬야 할 수 밖에 없는 이 모든 욕심들. 할 수만 있다면 이 순간을 공백으로 넘기고 나는 얼른 25살,26살, 아니 30살이 되고 싶다. 내가 내딛은 발걸음 하나에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하는 그 고독의 순간이, 내게도 얼른 찾아오기를 목하 고대한다.

by 염신영 | 2008/08/09 13:46 | 금요일의 아이 | 트랙백(1) | 덧글(0)

나는 금요일의 아이.


금요일의 아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라고 하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도.

세상의 모든 말이 안되는 일도 내가 이야기하면 말이 되는 것 같은 살아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만 지금의 젊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by 염신영 | 2008/07/26 17:06 | 금요일의 아이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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